“남성 아바타에 성폭행 당했다”.. 현실 닮아가는 메타버스 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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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에서 운영하는 가상현실(VR) 플랫폼 호라이즌 월드가 지난 4일부터 아바타 간 성추행 등을 방지하기 위해 4피트(1.2m) 거리의 안전 거리를 적용했다. 호라이즌 제공

최근 차세대 먹거리로 지목되면서 대세로 떠오른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내 성범죄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운영 중인 메타에서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기능까지 도입하면서 관련된 논의도 확산되는 모양새다.

7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메타의 자회사 호라이즌은 최근 자사의 가상현실(VR) 소셜 메타버스 플랫폼인 ‘호라이즌 월드’에 성희롱 등 성범죄 방지를 위해 온라인 속 이용자 캐릭터인 아바타 간 ‘거리 유지’ 기능을 도입했다.

호라이즌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아바타 주변에 ‘개인 경계’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을 추가하고, 아바타 간 4피트(약 120㎝)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한 아바타가 다른 아바타에 접근하더라도 개인 경계선 내로 진입할 수 없는 기능이 추가된 것이다. 호라이즌에선 아바타 간 거리두기가 정착되면 사용자 스스로 개인 경계 범위를 설정하는 기능까지 추가 가능한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호라이즌의 ‘거리두기’ 기능 도입은 최근 메타버스 내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 때문이다. 호라이즌 월드는 VR 헤드셋인 오큘러스 기기를 기반으로 메타에서 운영하는 소셜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2015년 오큘러스를 인수하고, 지난해에는 사명까지 바꾸며 메타버스에 사활을 건 메타가 지난해 12월 출시한 야심작이다. 오큘러스를 착용하고 ‘호라이즌’이라는 가상현실에서 다른 이용자들과 함께 이벤트에 참여하거나 대화 등의 상호작용을 비롯해 각종 게임 등도 즐길 수 있다.

문제는 호라이즌 월드 베타테스트 과정에서 한 이용자가 성폭행·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면서 불거졌다. 아동을 위한 메타버스 기술 연구 업체인 카부니의 니나 파텔 부사장은 지난해 12월 22일 호라이즌 월드에서 경험한 성추행 피해를 온라인에 상세히 공유한 것이다. 당시 파텔 부사장의 아바타는 가상현실에서 3, 4명의 남성 아바타에 둘러싸여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언어적 성희롱 피해까지 당했다. 파텔 부사장은 “남성들은 음성 채팅으로 ‘싫어하는 척 하지마’라며 소리 질렀다”며 “현실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경험이자 악몽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에 호라이즌 측은 내부적으로 당시 상황 검토에 들어갔고, 심각성을 인지한 끝에 거리두기 카드까지 꺼냈다. 비벡 샤르마 호라이즌 부사장은 “개인 경계선 기능이 가상세계라는 새로운 도구에서 적절한 행동 규범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과거에도 가상현실 속 성범죄는 존재했다

사실, 가상현실 플랫폼 내에서의 성범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03년 출시한 가상현실 게임 ‘세컨드라이프’에서는 성범죄와 도박, 폭력 등의 사건이 잇따랐다. 아바타끼리 성추행이나 살인사건도 발생했다.

2016년에는 VR 게임 ‘퀴브이아르’에선 한 여성이 다른 남성 이용자에게 성추행을 당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중지 요청에도 여성 캐릭터의 주요 부위를 만지는 행위도 시도했다. 당시 피해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떠다니는 형태의 손 그래픽이었을 뿐이지만 예전에 스타벅스에서 실제로 성추행을 당했을 때 느꼈던 기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VR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메타버스에서의 성추행은 또 다른 문제다. 현실과 매우 유사한 메타버스가 구축된다면, 현실 세계의 문제가 거울처럼 메타버스에서도 똑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VR 기술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정도로 ‘현실적’이라면,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한 연구와 사회적 논의도 진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전문위원회는 아바타에 대한 성적 공격 등 새로운 방식의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성적 인격권’ 침해 범죄를 신설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일랜드의 사이버심리학자인 그레인느 키르완 박사는 “가상세계에서의 경험은 인간에게 실질적 불안감을 일으킬 수 있다”며 “비디오게임 속에서 어두운 복도로 들어가야 하는 경우 현실과 유사한 생리적, 감정적 변화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인공감각 기술 발달하면 현실세계 성범죄와 유사해질 가능성도

그런 점에서 이번 조치는 VR 업계 1위인 메타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메타버스의 부작용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시행한 ‘선제 조치’로 풀이된다. 현재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는 인간의 오감 중 시각과 청각, 그중에서도 극히 제한적인 부분만 기술적 구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촉각, 후각, 미각 등 나머지 ‘인공감각’ 기술이 고도화된다면 가상세계에서의 성범죄로 인한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아바타 간 물리적 접촉으로 인한 갈등도 지금보다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IT 업계뿐 아니라 의료계와 군 방산업를 비롯한 전 산업에서도 이용자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인공감각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VR·증강현실(AR) 기기 시장은 지난해 19억3,000만 달러(약 2조3,000억 원)에서 2025년 181억8,000만 달러(약 21조8,000억 원)로 연 평균 6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메타에선 촉감 전달용 장갑인 ‘햅틱 글러브’ 개발이 진행 중이다. 햅틱 글러브를 착용할 경우, 메타버스에서 사물을 만지면 질감이나 압력, 진동 등 다양한 감각 재현도 가능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국내 VR업체 비햅틱스에선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주인공이 착용했던 수트처럼, 가상현실 속 촉각을 전달하는 재킷을 상용화해 판매하고 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미 로블록스와 제페토, 마인크래프트 등에서도 메타버스 내 성범죄 논란이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국내에서도 과거 세컨드라이프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메타버스 내 성범죄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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