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필라델피아로 온 동남아시아 난민이 오늘날 아프간 난민에게 보내는 희망의 손길

0
사진: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재정착에 관한 정보를 듣고 있다.

This article is the first of a series of nine stories which seeks to increase visibility and understanding of the diverse Asian American communities in the Philadelphia region and their strengths, challenges and histories. Now more than ever, we must ensure Asian voices have a platform to speak out against the issues impacting our communities.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우리 아시아인들은 우리 커뮤니티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플랫폼이 절실한 때입니다. 이 기사는 필라델피아 지역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역사 그리고 그들의 강점과 도전 과제 및 다양한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의 이해와 목소리를 널리 알리기 위한 9가지 이야기 시리즈 중 그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This series is developed in partnership with the Philadelphia Chinatown Development Corporation and in consultation with Sojourner Consulting, with support from the Independence Public Media Foundation.
이 시리즈는 독립 공공 미디어 재단( the Independence Public Media Foundation)의 지원을 받아 필라델피아 차이나타운 개발 공사(the Philadelphia Chinatown Development Corporation)와 소저너 컨설팅(Sojourner Consulting)의 협력으로 제작될 수 있었습니다.

리포터: 엘레니 핀켈스타인(Eleni Finkelstein)

사진: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 난민을 태우는 미군 헬기

 

Le-Quyen Vu is the Executive Director of the Indochinese American Council. She is also a refugee from Vietnam who arrived in Philadelphia in 1983 after fleeing Saigon in April 1975. Her husband’s family worked for the US Embassy and were among the few who escaped on U.S. helicopters, gripping tightly to it as it lifted off the ground. The scene can be compared to visuals seen on the news in August 2021 as the U.S. flew their final planes out of Kabul while Afghans clung to aircraft landing gear, some falling to their deaths, desperate to escape the Taliban’s return to power.
2021년 8월 각 채널의 뉴스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마지막 비행기를 이륙시키는 장면을 송출했다. 아직 채 접히지 않은 랜딩 기어에 필사적으로 매달린 아프간 사람들과, 그마저 놓쳐 저 멀리 탈레반의 불길 속으로 떨어져 버린 사람들, 하늘 위로 오른 자와 오르지 못한 자의 삶이 극명하게 바뀌는 순간이 수백만 명이 시청하고 있는 TV 스크린 위에서 펼쳐졌다. 리-쿠엔 부(Le-Quyen Vu), 그녀의 눈에는 이 장면이 그저 뉴스의 한 장면이 아니었다. 인도차이나 아메리카 위원회(the Indochinese American Council) 총책임자인 그녀도 1975년 4월 베트남 사이공을 탈출했던 베트남 난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의 가족은 미국 대사관에서 일했으며 미국 헬기에 몸을 싣고 베트남을 탈출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베트남 탈출 이후, 그녀는 1983년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다.

Vietnam was not the only Southeast Asian country affected by violence in the 1970s and 80s. Refugees from Cambodia and Laos also tried to make their way to the United States to escape bombings and violence. The U.S. involvement in Laos was an extension of the Vietnam War, as the communist group Pathet Lao was allied with Northern Vietnam. In Cambodia , the U.S. conducted a multi-year bombing campaign against communist Viet Cong troops stationed in the country. Those whose families were not employed by the U.S. military often had to navigate an 8-to-10 year gauntlet to make their way through refugee camps and eventually obtain refugee status and entry into the U.S.
1970년대와 80년대 베트남만이 전쟁의 영향을 받은 동남아시아 국가는 아니다. 공산당 그룹 파테트라오(Pathet Lao)가 북부 베트남과 동맹을 맺으면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연장선으로 라오스에 대한 개입을 시작했고 캄보디아는 베트콩의 주둔지로 미국에 의해 수년간 폭격을 당했다.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 온 엄청난 수의 난민들도 전쟁과 테러를 피해 미국으로 향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미군에 고용되지 않았던 현지인들을 난민 캠프를 통과하고 난민 지위를 얻고 미국에 입국하기까지 총 8년에서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뎌내야 했다.

Once in Philadelphia, refugees like Le-Quyen’s family were not always greeted warmly by the City of Brotherly Love. Le-Quyen spoke to us about some of the issues faced outside of language barriers for incoming refugees such as Isolation, cultural differences, and intentional discrimination from already established cultural communities. Residents of certain poverty- stricken areas–whose pre-existing populations were subject to structural inequality and discrimination–viewed refugees as being treated “better” due to their receipt of government aid and benefits. This sometimes led to violence and racist acts against Southeast Asian refugees.
리-쿠엔과 그녀의 가족은 형제애의 도시라 불리는 필라델피아에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작은 꿈을 가슴에 앉고 도착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언어 장벽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이, 이미 세워진 다른 문화 공동체로부터 받은 의도적인 차별 그리고 고립까지 이곳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필라델피아 빈곤 지역의 주민들을 정부가 난민에게 ‘더 나은’ 대우를 한다며 동남아시아 난민을 폭력과 인종차별 대상으로 삼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A few months ago, Afghans fleeing Taliban control began arriving in Philadelphia and other regions of the U.S. with similarly harrowing escape stories to those of Le-Quyen and her family. In October 2021, while picking up an Afghan man and former U.S. military ally from the Philadelphia airport to bring him to his temporary Airbnb, a volunteer driver greeted the man with patience and gratefulness. After a few minutes of getting to know each other he asked, “So what’s the plan?” Confused, the driver asked him to elaborate. “To get the rest of my family out of Afghanistan. I was told I would come first and the rest of my family would come to America Later.”
몇 달 전 탈레반 통제를 피해 탈출한 아프간 난민들이 필라델피아와 미국의 다른 지역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탈출 이야기는 오래된 리-쿠엔의 이야기와 많이 닮아있었다.

2021년 10월, 자원봉사자 운전기사는 아프가니스탄 남성과 미군과 동맹이었던 난민을 임시 에어비앤비 시설로 데려가기 위해 필라델피아 공항에 도착했다.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을 맞이하고 차 안에 있던 짧은 시간 동안 서로를 조금 알게 된 후, 아프간 남성이 운전기사에게 질문을 했다.

“그래서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거죠?”

질문에 당황한 운전기사는 더 자세하게 말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가족들을 위한 계획이요. 제가 먼저 오고 나머지 가족들을 나중에 미국에 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The driver had to explain to the man that there is no plan in place right now, and she does not know when, or if, there will be. The man continued to tell her that his wife and children are currently hiding in a basement in Afghanistan. They are being threatened by the Taliban since he was an ally of the U.S. military. They have little access to food and resources since nearly the whole country has become a food desert. Hunger will likely kill more Afghans than war this Winter.
운전사는 담담하게 지금 당장은 계획이 없으며 그들의 구출 계획이 시행될지도 불분명하다고 사실을 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아프간 난민 남성은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아프가니스탄 지하실에 숨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미군 동맹으로 일했기 때문에 그들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고 전했다.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남은 가족들이 아무런 음식과 지원 없이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막막한 현실과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그의 답답한 현실은 어둠 그 자체 같이 보인다. 아프가니스탄의 이번 겨울 기아 사태는 전쟁보다 더 많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갈 것으로 예측됐다.

Sadly, this is only one man’s experience among the tens of thousands of Afghans currently being resettled across the U.S. There are countless stories of husbands being separated from their children and pregnant wives, children being separated from their parents, family being left behind in Afghanistan, and fear of being in the U.S. alone with little support. The identity of many arriving Afghans, including this man’s, have been kept private due to the potential for retributive violence against their families from the Taliban.
슬프게도 이 이야기는 현재 미국 전역에서 재정착하고 있는 수만 명의 아프가니스탄인의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자녀와 임신한 아내와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진 사람들 그리고 가족은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채 낯선 땅에 홀로 있는 사람들까지 수천 명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들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눈물의 비밀로 오늘을 맞이한다. 이 남성을 포함해 미국에 도착하는 많은 아프간 사람들의 신원은 탈레반으로부터 현지 가족들이 보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비밀로 유지된다.

After two decades of a U.S.-led war in Afghanistan and the return to power of the Taliban, hundreds of thousands of Afghans were put in danger, especially those who worked alongside the U.S. military as soldiers, translators, and assistants for diplomats and troops. Failing to qualify for refugee status due to the speed of the U.S. exit of Afghanistan, Afghans are in the U.S. on a program called Humanitarian Parole and Special Immigrant Visas. In this scenario, the refugee vetting process is revised to a short form proving relation to the US military. Parolee status is functionally equivalent to refugee status.
20년 동안 미국 주도하에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그 후 탈레반의 재집권까지, 수십만 명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위험에 처해왔었고 지금도 그들의 생명은 위협받고 있다. 특히 미군과 함께 일했던 군인, 번역가, 외교관 및 군대 협력자들은 더 큰 위험에 처해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속도로 인해 난민 자격을 갖추지 못한 아프간인들을 인도주의적 가석방(Humanitarian Parole) 또는 특별 이민 비자로 미국에 체류하고 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는 난민 심사 절차가 미군과의 관계를 증명하는 짧은 형식으로 간소화된다. 현재 난민 자격을 얻지 못한 상황이라더라도 위의 자격으로 미국에서 체류하고 있다면 난민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된다.

사진: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재정착에 관한 정보를 듣고있다.

Many Afghans have already encountered the hardships of establishing an Afghan community among existing cultural groups, similar to the struggles faced by other Southeast Asian refugee families when they arrived decades ago. Resettlement groups seek to make the process easier. Yet, due to the volume of individuals who need help and the lack of funding and resources, the organizations lack capacity.
수십 년 전 다른 동남아시아 난민 가족들이 겪었던 어려움과 유사한 상황을 많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똑같이 겪고 있다. 그들은 기성의 다른 문화 집단들 사이에서 아프가니스탄 공동체를 구축하는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재정착을 위한 절차를 더욱 쉽게 만들려고 하고는 있지만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자금 및 기타 자원의 부족으로 정착을 돕는 조직들의 역량이 상당히 부족한 상태이다.

“I don’t recall [if] there’s intentional effort from non-profits or the government to really intentionally help [long term],” says Le-Quyen about the issue. Most government programs administered by resettlement agencies can only provide benefits for six to nine months. This system is designed to support a short to medium term transitional support. “We help people settle and get the basic necessities, then we say okay we need to help the next person.”
리-쿠엔은 비영리 단체나 정부가 장기적으로 도움을 주려는 노력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한다. 재정착 지원 기관에서 관리하는 대부분의 정부 프로그램은 6-9개월간만 지원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중단기 적으로만 지원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리-쿠엔은 “우리는 사람들이 정착하고 기본적인 필수품을 구하도록 도운 후 다음 사람을 바로바로 도와야 합니다”라고 전했다.

The Hebrew Immigrant Aid Society (HIAS) and Nationalities Services Center (NSC) are the two Philadelphia nonprofits at the forefront of our region’s refugee resettlement. The organizations provide temporary housing, English lessons, government assistance, affordable permanent housing, education, employment opportunities, and other support to incoming refugees and humanitarian parole recipients. The caseworkers at these agencies have been working tirelessly since the fall of 2021 to help the Afghans adjust to their new life in Philadelphia. HIAS has been on the front lines of resettlement plans since the late 1800s. The organization was originally founded as an organization to help Russian Jewish Women seek help and avoid assault and trafficking upon settling in America. After Saigon fell in 1975, HIAS opened its doors to Vietnamese, Cambodians, and Laotians. Since then, HIAS has helped immigrants and refugees of all faiths and backgrounds.
히브류 이민 지원 협회(HIAS)와 국적 서비스 센터(NSC)는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난민 재정착 지원에 있어서 최선방에 있는 두 개의 비영리 단체이다. 이 단체는 임시 주택, 영어 수업, 정부 지원, 저렴한 영구 주택, 교육, 고용 기회 및 기타 지원을 난민 또는 인도주의적 가석방(Humanitarian Parole) 지위를 얻은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 기관의 사회복지사들을 2021년 가을부터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필라델피아에서 새로운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해 왔다. 히브류 이민 지원 협회(HIAS)는 1800년대 후반부터 난민 재정착 최전선에서 도운 기관으로 원래 러시아 유대인 여성이 미국에 정착할 때 폭행이나 인신매매를 피할 수 있도록 돕는 조직으로 설립되었다. 히브류 이민 지원 협회는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된 후 베트남인, 캄보디아인, 라오스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냈고 그 후 모든 신앙과 다른 배경을 가진 이민자와 난민을 돕고 있다.

Executive Director of HIAS Pennsylvania Cathryn Miller-Wilson and her staff have given up many days and nights to help our incoming friends from Afghanistan. “We have been pretty frantic since the crisis happened,” says Miller-Wilson, who explained that the refugee resettlement process typically takes 10 days per family, but has been extended indefinitely due to the volume of cases. The resettlement agencies sometimes partner with the private sector to fulfill certain specific needs. RiceVan, a sister company of Metro Chinese Weekly, collaborates with HIAS and NSC to provide culturally-appropriate halal meals and groceries to allow the agencies to focus on more specialized human services. While agencies like HIAS cannot ease the pain and trauma of the refugees, they are working nonstop to make the transition to the United States as seamless as possible.
히브류 이민 지원 협회 펜실베니아의 총감독 캐서린 밀러-윌슨(Cathryn Miller-Wilson)과 그녀의 직원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오는 친구들을 돕기 위해 밤낮으로 쉼 없이 일하고 있다. 밀러-윌슨은 난민 재정착 절차가 일반적으로 가족당 10일이 소요되지만 엄청나게 많은 난민 숫자로 인해 현재 무기한 연장됐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우리는 엄청나게 바쁜 날을 보내고 있어요”라고 밝혔다. 난민 재정착 지원 기관은 특정한 필요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민간 업체와 협력하기도 한다. 메트로 차이니스 위클리(Metro Chinese Weekly)의 자매 회사 라이스 밴(RiceVan)은 히브류 이민 지원 협회(HIAS)와 국적 서비스 센터(NSC)와 협력해 중동 문화에 적합한 할랄 식사 및 식료품을 제공하여 난민 지원 기관이 보다 전문화된 인적 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난민 재정착 지원 기관들은 난민들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덜어줄 수는 없지만 가능한 한 원활하게 미국에 정착 할 수 있도록 돕고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난민과 HIAS 총 책임자 캐서린 밀러-윌슨

Groups like Afghans of Philadelphia (AOP Sola) have tried to bridge the gap where governmental and resettlement agency help has fallen short. The organization has taken on the purpose of establishing a united Afghan community in Philadelphia in hope of combatting some of the isolation and discrimination faced by families placed in those already-established communities of different cultures.
필라델피아의 아프간 사람들(AOP Sola)과 같은 그룹은 난민 재정착 지원 기관이 줄 수 없는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조직은 난민들이 조금 더 수월한 재정착 그리고 난민 가족이 직면한 고립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공동체를 설립하려고 노력 중이다.

Farwa Ahmadi is the Director of AOP Sola and is also a full time medical case manager for NSC. She and the board members created AOP in August when news of America’s evacuation of Kabul broke and the public learned of the number of Afghans coming to the Philadelphia Region.
국적 서비스 센터(NSC)의 의료 케이스 매니저인 팔와 아매디(Farwa Ahmadi)와 이사회 멤버들은 지난 8월 미국이 카불에서 철수한다는 소식과 필라델피아로 들어올 대략적인 난민의 숫자를 알게 되고 필라델피아의 아프간 사람들(AOP Sola)을 창립했다.

“We have a good population here, but they’re not really unified,” she says about the existing Afghans in the area. Prior to August 2021, about 700 Afghans who have immigrated or sought refuge in years past mostly settled in the Northeast near Oxford Circle and Mayfair. However, a close-knit community has not taken hold. With help from those already here, AOP hopes to provide comfort, resources, education, and support to the incoming Afghan people. Vice President Selli of the group emphasizes “We [AOP] are the bridge between the outside world and the Afghan world.”
2021년 8월 이전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이민자들과 난민 자격으로 미국으로 온 사람들이 북동부 옥스퍼드 서클(Oxford Circle)과 메이페어(Mayfair) 근처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긴밀한 커뮤니티를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매디는 “필라델피아 지역에는 실제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이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다”라고 전했다. 이미 이곳에서 정착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도움으로 AOP는 새롭게 미국으로 온 아프간 난민들에게 교육 및 자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들보다 먼저 미국에 도착한 동포들이 위안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필라델피아의 아프간 사람들(AOP)의 부사장 셀리는 “우리는 낯선 세계에 온 그들을 또 다른 아프가니스탄의 세계로 연결해 줄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길 희망합니다”라고 밝혔다.

The board of AOP Sola are all either first or second generation refugees and can sympathize with the disorienting experience today’s incoming Afghans must navigate. One board member recalls growing up with her mother who would often cry and exclaim in frustration that she missed her family in Afghanistan. Her mother did not speak English and often faced discriminated. One day they met another Afghan family who introduced them to a local mosque, which allowed her family to feel part of a community for the first time since coming to the U.S. This is what AOP hopes to accomplish for the thousands of new refugees being settled in Philadelphia, along with providing medical literacy, cultural lessons for schools accepting Afghan students, mental health resources, and more.
필라델피아의 아프간 사람들(AOP Sola)의 이사회는 모두 난민 1세대 이거나 2세대로 오늘 미국에 도착한 아프간 난민들의 감정과 두려움 그리고 앞으로 이겨내야 할 일들을 함께 공감해 줄 것이다. AOP의 한 이사회 멤버는 그녀의 어머니가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던 시간들을 함께하며 자라났다며 당시의 일을 회상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낯선 곳에서 그들의 언어를 하지 못했고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을 또 다른 아프가니스탄 가족들을 만났고 그 가족들은 그녀와 어머니를 지역 모스크 사원에 소개했다. 그때 그녀의 가족은 미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공동체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 AOP는 의학 지식, 문화 수업, 정신 건강을 위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AOP가 필라델피아에 온 아프가니스탄 난민들 위해 세운 궁극의 목표이다.

Regarding the current protocols in place for resettling Afghan families, Miller-Wilson of HIAS noted that “the policy in place is disappointing.” With a drastically different political climate, refugee policy has changed since the 70s and 80s. As Le-Quyen noted earlier, there seems to be no handoff between the end of the resettlement process and the beginning of community Assimilation.
히브류 이민 지원 협회(HIAS)의 밀러-윌슨은 아프간 난민 가족의 재정착을 위해 현재 시행 중인 프로토콜에 대해 “굉장히 실망스러운 정책”이라고 전했다. 70년대와 80년대 이후로 정치적 기류가 크게 바뀌면서 난민 정책도 바뀌었다. 앞서 리-쿠엔이 언급했듯이, 재정착 과정 이후 사회적 동화 과정으로의 연결고리 부재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Fernando Chang-Muy is the Thomas O’Boyle Lecturer of Law at University of Pennsylvania’s Carrie Law School, where he teaches Refugee Law and Policy. Metro Chinese Weekly interviewed Chang-Muy to discuss the past and present of refugee law and policy and how it has changed since the 1970s under Presidents Gerald Ford and Ronald Reagan.
메트로 차이니스 위클리(Metro Chinese Weekly)는 펜실베니아 대학교 캐리 로스쿨에서 Thomas O’Boyle 법학 강사로 난민 법과 정책을 가르치고 있는 페르난도 창-무이(Fernando Chang-Muy)를 만나 난민 법과 정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1970년대 이후 제너럴 포드 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행정부 치하에서 난민 법과 정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해 논의했다.

During World War II, the United States was infamous for their underwhelming response. “The cry of ‘Never Again’ was heard around the world, with the United States as the leader. We will create a structure…[When Saigon fell] we did it without really blinking an eye, and we did it in part of that shame from World War II,” says Chang-Muy.                               창-무이: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이 보여준 대응 방식은 악명이 높았습니다. “절대로 다시는, Never Again!”이란 외침은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미국은 우리만의 방식을 만들어내겠다고 했죠. 그리고 사이공이 함락되었을 때 미국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모든 일을 자행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수치심의 일부로 남아있습니다”

As a response, Congress established the Federal Refugee Resettlement Program , which determined how many refugees the U.S. is willing to accept and economically support each fiscal year. Reagan determined the number in 1975 to be 220,000, which is two to three times the number of Afghans the U.S. has taken and vowed to take from the first time the Taliban seized power through the U.S. military exit of Afghanistan in August, 2021–a period spanning some 20 years. The 2021 refugee intake under the Trump Administration was capped at 15,000.
이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 의회는 연방 정부 난민 재정착 프로그램(Federal Refugee Resettlement Program)을 재정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이 각 회계 연도에 경제적으로 지원할 의향이 있는 난민 수를 결정하는데 레이건은 1975년 그 숫자를 22만 명으로 결정했다. 22만 명이라는 숫자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서 철수할 때까지 지난 20년간 미국으로 데려오거나 난민 자격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한 아프가니스탄 난민 숫자의 3배에 달하는 숫자이다. 하지만 2021년 트럼프 행정부는 난민 수용 인원을 15,000명으로 제한해버렸다.

Decades earlier, after the fall of Saigon, the U.S. had a basic plan in place due to the recent Refugee Act. Those who wished to seek refuge in the U.S. first went to other countries and territories like Thailand, Hong Kong, and the Philippines. This allowed the U.S. to interview and vet those fleeing their countries and bestow refugee status, which is defined as someone who is “outside their country of origin with a well-founded fear of persecution, and persecution had to be [linked] to five grounds–race, nationality, religion, social group, or opinion.” Most tied their fear to their Christian faith and disapproval of communism.
수십 년 전 사이공 함락 이후 미국은 난민법에 따라 기본 프랜을 세웠다. 미국으로 망명을 원하는 사람들은 먼저 태국, 홍콩, 필리핀 등 다른 나라의 영토로 떠나야만 난민 지위를 받을 수 있는 인터뷰를 할 수 있었고 인터뷰에서 ‘박해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입증’한 사람들은 난민 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었다. 자신의 나라를 떠나야 했던 그 박해에 대한 근거는 5가지 이유로 연결되어야 한다: ‘인종’, ‘국적’, ‘종교’, ‘사회 집단’ 또는 ‘의견’.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해에 대한 이유를 기독교 신앙과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와 연관시켰다.

Vietnamese refugees previously employed by the U.S. military did not have to otherwise prove their refugee status to earn entry to the U.S. These families were quickly taken to a refugee camp where they awaited a U.S. family and government program to financially support them as they made their journey to the U.S. Refugees from Cambodia and Laos were taken to refugee camps where their files were examined and vetted with an intense 8-step refugee process before being approved to relocate to the United States. The arduous process often took years.
이전에 미군을 위해 일했던 베트남 난민들은 미국에 입국하기 위해 다른 방법으로 난민 지위를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해당 가족들은 난민 캠프로 신속하게 이송되었고 캠프에서 미국으로 이동하는 동안 연방 정부가 제공하는 경제 지원금을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캄보디아나 라오스에서 온 난민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그들은 난민 캠프로 이송되어 미국으로의 이주 승인을 받기 전 8단계의 엄격한 난민 자격 부여 절차를 통과해야 했고 이 과정은 종종 몇 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The Afghanistan evacuation process was both faster and more haphazard. The rush to leave Kabul left no time to vet those seeking refuge to the United States, leaving the Afghans to come in on a humanitarian parole program. With this process, translators and lawyers are scarce. Social workers, along with federal and state funding for the organizations supplying resources such as HIAS, are also spread thin.
이번 아프가니스탄 철수 과정은 더욱 급작스러웠고 더 무질서했기 때문에 난민 지위 자격 심사를 할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인도주의 가석방 프로그램을(humanitarian parole program) 통해 미국으로 들어오게 됐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번역가와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데 그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HIAS와 같은 난민을 위한 물자와 자원을 공급하는 단체를 보조하는 사회복지사나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기금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Proven by history, the U.S. is capable of accepting a large number of refugees. In cities across the country, the issue seems to lie in the scarcity of certain core resources needed to resettle Afghans in American communities. The largest obstacle is lack of affordable housing. Each family receives a temporary housing stipend, which is often far less than the monthly rent needed to house a family. In Philadelphia, most Afghan are settling into permanent housing locations around Northeast Philly and Bensalem as suitable and affordable housing becomes Available.
역사가 증명하듯이, 미국은 많은 수의 난민을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전역의 도시와 미국 사회에 아프간 난민들을 재정착 시키는데 필요한 특정 핵심 자원이 부족하다. 그것은 저렴한 주택의 부족인데 난민 가족들은 월세 지원을 임시적으로 받지만 그 금액은 한 달 치 월세를 내기도 부족한 금액이다. 필라델피아 지역에서는 특히 노스이스트 필라델피아와 벤세일럼(Bensalem) 주변에 저렴한 주택이 제공됨에 따라 난민들이 주변의 영구 주택에 정착하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다.

With only a short term federal plan, a lot of the responsibility of resettlement falls on local nonprofits and the public. “It falls on the cities to pick up the pieces, and then falls on the resettlement agencies,” says AOP. “Many organizations are run by immigrants or children of immigrants so they are sensitive to the issues so they’ve done the best that they could.”
연방 정부의 난민 지원 플랜은 상당히 짧은 기간만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이후 난민 재정착에 많은 책임은 지역 비영리 단체와 대중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AOP는 “이후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도시와 정착 기관의 몫으로 남습니다. 많은 조직은 이민자나 이민자의 자녀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해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난민들을 돕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The effort to supply assistance has been partially led by those in similar positions years ago. For instance, the Indochinese American council run by Le-Quyen Vu is a non-profit organization aimed to create opportunities for children and adults through education, such as by offering English lessons and cultural programs. Their services are available to all refugees and immigrants, including those in the Afghan community.
수 십 년 전 현재의 아프간 난민과 같은 모습으로 미국으로 들어왔던 사람들이 부분적으로 난민들을 지원하고 돕는데 주도해 나서고 있다. 리-쿠엔 부(Le-Quyen Vu)가 운영하는 인도차이나 아메리카 위원회는 비영리 단체로 난민 어린이와 성인들에게 영어 수업 및 문화 프로그램과 같은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에게 올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함께 모색하고 찾는데 목표를 두고 운영되고 있다. 그들의 이러한 모든 서비스는 아프가니스탄 공동체를 포함한 모든 난민과 이민자에게 제공되고 있다.

사진: 리-쿠엔 부, 인도차이나 아메리카 위원회 책임자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Miller-Wilson shared another story about a Vietnamese man helped by HIAS in the 70s who is today a landlord renting out affordable housing to Afghan evacuees. Others such as AOP have organized community marches to spread awareness and launched donation drives and an ambassador program so those who want to help can.
히브류 이민 지원 협회(HIAS)의 밀러-윌슨은 70년대에 HIAS의 도움을 받은 베트남 남성이 현재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게 저렴한 주택을 임대하고 있는 집주인으로 난민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필라델피아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AOP)과 같은 단체는 난민에 대한 인식 확산을 위해 지역 사회를 행진하거나 도움을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기부 캠페인과 엠버서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Over the past two decades, Islamophobia has skyrocketed. Only years ago, the Trump administration signed a ban on entry from a half-dozen Muslim-majority countries. It is vital to ensure the public sector and communities are aware of their shortcomings with refugee communities and held accountable to repair those faults. There are many parallels with the Afghan community in Philadelphia and the Southeast Asian communities who arrived as refugees in the 70s and 80s, but the Afghan challenges still prove unique in various ways.
지난 20년간 이슬람 혐오가 급증했다. 불과 몇 년 전, 트럼프 행정부는 6개 이슬람 국가의 입국 금지에 서명하기도 했다. 공공 부분과 커뮤니티는 난민들에 대한 인식 부족을 인식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데 앞장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다. 필라델피아의 아프가니스탄 공동체와 70년대와 80년대에 난민으로 미국으로 온 동남아시아 공동체는 많은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지만 아프간 문제는 여전히 여러 면에서 상당히 다른 점도 많다.

With former Southeast Asian refugees leading by example, it is important to express empathy and support to incoming Afghans. The resettlement process handles the bulk of the transition to life in Philadelphia, but the issues of language access, mental health services, medical literacy, and more still remain. Groups like AOP and the Indochinese American Council are stepping up to the plate and bring forth the lesson that the arrival of Afghans evacuees in Philadelphia provides a fresh opportunity for the city and its people to do their part to bring comfort and peace to those who have already faced a lifetime of trauma.
재정착 과정에서 대부분의 난민들을 필라델피아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지만 여전히 그들의 앞에는 언어 장벽, 정신 건강과 의료 문제 등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펼쳐져 있다. 동남아 난민 출신의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앞장서고 있지만 더 많은 시민들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위한 공감과 지지 형성이 절실하다.

난민과 이민자로 이뤄진 AOP와 인도차이나 아메리카 위원회(Indochinese American Council) 같은 조직은 필라델피아에 발을 내디딘 아프간 난민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의 마음의 상처를 공감하고 위안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메시지에 함께하고자 하는 더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Are you interested in helping the local Afghan community? The AOP ambassador program application can be found through their Instagram @AOPxsola.
지역 아프가니스탄 커뮤니티를 돕는 데 관심이 있다면 @AOPxsola 인스타그램을 통해 AOP 앰버서더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습니다.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